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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목욕문화

포르투갈 로마식 온천

by info-wideinfo 2025. 3. 22.

1. 고대 로마의 발자취, 포르투갈 온천 문화의 뿌리

포르투갈의 온천 문화는 단순한 자연 요법의 산물이 아니라, 고대 로마 제국의 도시계획과 위생 철학에서 비롯된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 기원전 2세기경 로마는 이베리아반도 전역을 점령하며 도시를 확장했고, 오늘날 포르투갈 중북부에는 ‘아쿠아 플라비아(Aquae Flaviae)’로 불렸던 온천 도시를 비롯해 다수의 공중목욕 시설(Balneae)을 건설했다. 로마인에게 목욕은 청결을 위한 행위이자 사교와 정치, 철학 토론이 이루어지던 사회문화적 중심지였다.

샤베스(Chaves)는 이러한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한 대표적인 도시다. 황제 플라비우스 시대(1세기경)에 건설된 이곳은 섭씨 73도의 고온 온천이 분출되며, 로마식 탕 구조와 배수 시설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특히 온탕(카르둘룸), 미온탕(테피다리움), 냉탕(프리지다리움)으로 이어지는 순환식 입욕 구조는 고대 로마의 과학적 목욕 문화를 잘 보여준다. 산 페드루 두 술(São Pedro do Sul)이나 모샤코(Monção) 등지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발견되어, 로마의 생활 유산이 포르투갈 전역에 깊이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포르투갈 남부의 알렌테주(Alentejo) 지역에서 발굴된 일부 유적들 역시, 로마식 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목욕 후 피부를 관리하기 위해 사용된 향유를 담았던 유리병 조각, 열탕에서 냉탕으로 이동하는 발걸음을 조절하기 위한 타일 바닥의 흔적 등은, 고대 로마인의 목욕 문화가 실용성과 섬세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흔적은 고대 도시의 위생과 공공 건강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체계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2. 중세의 침묵과 수도원의 전통 계승

중세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공중목욕 문화가 쇠퇴하거나 교회의 통제로 억제되었지만, 포르투갈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로마의 입욕 문화가 수도원을 중심으로 조용히 계승되었다. 특히 12세기 산 페드루 두 술의 베네딕토 수도사들은 온천 시설을 재정비해 피부병, 관절염, 류머티즘 등 다양한 질환의 치료에 활용했다. 이는 중세 유럽에서 보기 드문 온천의 의학적 활용 사례로 평가된다.

16세기 대항해 시대에 접어들며 포르투갈은 인도, 아프리카, 브라질 등지에서 들여온 약용 식물과 향신료를 온천수에 접목시키는 시도를 했다. 이는 고대 로마의 입욕 철학에 동양과 아프리카의 약초 지식을 결합한 독특한 형태의 포르투갈식 통합 온천 의학으로 진화했다. 18~19세기에는 왕족과 귀족들이 건강 회복과 휴양을 목적으로 온천 도시를 방문했고, 이로 인해 온천 마을은 음악회, 문예 살롱, 산책로, 기후 요법이 결합된 유럽식 웰니스의 원형으로 발전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포르투갈 왕실은 해마다 특정 계절이 되면 귀족들과 함께 온천 마을을 방문해 전통 치료법을 따랐으며, 일부 왕실 전용 욕탕이 따로 운영되었다는 문서도 존재한다. 이는 온천이 단순한 물리치료를 넘어 궁정 문화의 일부로 흡수되었음을 의미한다. 더불어 이 시기 온천 마을 주변에는 숙박과 식사를 포함한 복합 휴양 시설이 생겨나며, 오늘날의 의료 관광의 전신이 되는 모델이 형성되었다.

3. 고대 유산의 복원과 현대적 재구성

21세기 들어 포르투갈은 온천 유적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며 복원과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샤베스와 산 페드루 두 술은 문화재 보존과 관광 자원을 결합한 대표 사례다. 샤베스에서는 로마시대 목욕 문화를 전시하는 공간과 현대적 스파 센터가 함께 조성되어, 방문객은 고대의 유산을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다. 유리 구조물로 보호된 유적지와 스팀룸, 마사지실, 로마식 열탕-냉탕 순환 시스템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을 만든다.

이러한 복원은 단순한 유적 보존을 넘어서, 온천의 의료적 가치와 웰니스 기능을 융합하려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일부 온천 클리닉에서는 의료진과 협업해 피부 질환, 만성 통증, 심리적 스트레스 등에 맞춘 맞춤형 온천 처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기에 식이요법, 명상, 슬로우 푸드 체험까지 결합되어, 포르투갈의 온천은 신체와 정신의 회복을 돕는 통합 치유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최근에는 고대 로마식 입욕 절차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테르말 루트(Thermal Route)’ 프로그램도 도입되고 있다. 이는 고온욕-미온욕-냉욕 순환, 스크럽 마사지, 아로마 테라피, 온천 증기흡입 등 단계별 힐링 체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만성 피로와 스트레스 완화에 효과적인 웰니스 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포르투갈 로마식 온천

4. 지속 가능한 온천 문화와 지역사회의 미래

포르투갈은 유럽연합의 환경 및 문화유산 정책에 따라, 지속 가능한 온천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온천수의 과잉 추출을 방지하고 생태계 보존을 고려한 설계 원칙이 적용되고 있으며, 자연 채광과 통풍을 활용한 전통 건축 기법의 재해석도 활발하다. 지역 농산물과 전통 치유법을 활용한 슬로우 웰니스 모델은 치료, 지역 경제 활성화,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관광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젊은 세대를 위한 힐링 관광, 디지털 디톡스 프로그램, 가족 단위의 체험형 스파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는 온천 문화를 노년층 중심의 건강 관리에서 벗어나 전 세대를 아우르는 생활 속 웰니스 문화로 확장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로마식 온천 유산은 이제 의료, 관광, 생태, 문화가 융합된 복합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단순한 전통 계승을 넘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미래형 치유 문화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2020년대 들어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면역력 강화와 정신적 회복을 위한 자연 기반 치료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포르투갈 온천의 가치가 다시 부각되었다. 팬데믹 이후 많은 온천 시설은 방역과 안전 기준을 강화하면서도, 개인 중심의 치유 공간으로 운영 방향을 전환했고, 이는 ‘포스트 팬데믹 웰니스’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